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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스토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이야기

by BAMBINOO 2023. 1. 16.

영화 &lt;허스토리&gt; 포스터
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세상에 전하는 그녀들의 이야기

1991년 부산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던 문정숙(김문숙 할머니). 그녀는 자신의 사무실 한켠의 공간을 내주어 위안부 & 정신대 피해자 신고센터를 운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가정부였던 배정길이 그곳을 찾아왔다. 그녀 역시 위안부 피해 여성 중 한명이었다. 그렇게 정길 그리고 위안부에 대한 진실을 접한 정숙은 피해 여성들을 위하여 분주히 움직인다.

결국 그녀는 피해 여성들을 위하여 재판을 열기로 결심한다.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한 쉽지 않은 싸움이 분명했다.

 

일본으로 넘어간 정숙은 변호사를 만나며 재판을 위한 준비를 이어 나간다.

총 10명의 피해 여성들이 모였고 이들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여러 차례 오가며 재판에 참여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의 여론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숙과 10명의 여성들은 당당하고 용기있게 당시의 사건들을 증언한다.

그렇게 시작된 첫 재판. 그 결과는 모두의 예상 그리고 기대와 다르게 너무나도 허무하게도 끝이 났다. 재판 이후 할머니들은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식당은 물론 숙박업소까지 그들을 반겨주지 않았다. 이후의 재판에서도 일본 재판부는 무대응 전략으로 쉽게 재판을 끝내버린다.

 

그렇게 소득 없이 모든 재판이 끝이 나는 듯싶었으나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서귀순 할머니를 정신대로 보냈던 당시 소학교 선생님이 증인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날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껴며 살아왔던 증인은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고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기 위하여 왔다고 하였다. 마지막 재판 날이 찾아오고 판결이 나왔다. 일본 법원은 일본 정부 그리고 일본군의 책임을 인정하지만 공식 사죄의 필요는 없으며 위자료는 각각 겨우 300만원 지급의 의무가 있다고 판결하였다. 그들이 원하던 것은 돈이 아니었다. 그저 개개인에 대한 공식적이고 진심 어린 사과였다.

 

 

6년간 23번의 재판 (관부재판)

1992년 부산의 '위안부' 그리고 '정신대' 피해자 10면의 여성이 일본 정부에게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청구 소송한다.

이 재판이 바로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시모노세키 재판이다. 우리에게는 '관부재판'으로 알려져있다.

여기서 '관부'란 한국의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줄여 이르는 말이다. 피해 여성들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일본을 오가며 총 23번의 재판에 참석한다. 당시 재판을 준비했던 사람들 그리고자신들의 고통을 증언해야 했던 10명의 여성들 모두에게 길었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1998년 4월 27일 일본 재판부는 국가 배상 책임에 대해 원고의 손을 들었다. 일본 정부가 입법의 의무가 있었음에도 입법을 하지 않아 피해자들의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인정하였다.

 

아물지 않는 상처, 일본군 위안부

일본은 만주사변,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통하여 영토와 세력을 점점 확장해 나갔다. 전선이 확대되고 전쟁 역시 장기화됨으로써 초기에 동원되었던 일본 창기와 기녀들의 이동이 어려워졌다. 성병 역시 창궐하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본은 현지의 여성들을 이용하였다. 한국,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창기 여성들을 동원하였고 심지어 민간인들까지 이용이 되었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이 이러한 위안부 민간인 피해자들에 대한 무책임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난 현재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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