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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항거> 유관순 그리고 독립을 위해 싸운 여성들

by BAMBINOO 202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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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항거> 포스터

가슴이 먹먹해지는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

영화 <항거>는 자유로운 영혼의 어린 독립투사 유관순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함께했던 8호실의 여인들.

부유한 집에서 부족한 없는 사랑으로 자라난 유관순. 그녀는 17살이 어린 나이었지만 일제의 억압에 맞서 싸웠다.

1919년 천안 병천 아우내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다. 약 3,000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유관순의 선창으로 만세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치던 그녀는 그날 그곳에서 부모님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부모님을 잃을 것도 모자라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서대문 형무소 8호실. 수감번호 371번 유관순.

세 평 남짓 되는 8호실에는 수많은 여성 수감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만삭의 임산부도 좁고 차가운 그곳에 있었다. 그녀들은 그저 조국을 위해 만세를 외쳤던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일본인을 살해하거나 다치게 한 것이 아닌 그저 말 할 수 있는 입으로 '만세'를 불렀을 뿐이다. 감옥은 차가웠으나 8번 방은 서로를 향한 배려로 가득차 온정이 넘쳐났다. 방을 빙빙 돌며 불렀던 노래 '아리랑'. 누군가 오면 노래는 멈추었다. 그녀들은 이러한 자신들을 사람이 오면 울음을 멈추는 개구리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외쳤다.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

 

1920년 3.1운동이 일주년이 되던 날. 유관순은 8호실에서 연설을 시작한다. 그리고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유관순 단 한명이 외쳤던 만세는 8호실 감옥을 가득 채웠고 오빠가 있던 남자 감옥으로까지 울려 퍼진다.

형무소에서 들려오던 만세는 마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1년 전의 그날을 재연하게 된다. 결국 이번에도 주도자로 지목된 유관순은 혹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유관순은 출소 이틀을 앞두고 생을 마감한다.

 

 

1919년 4월 1일 / 병천 아우내장터

 '아우내'는 '여러 시내가 합쳐지는 곳'이란 뜻이다. 이 뜻을 한자로 적은 것이 '병천'이다.

경상도와 한양을 이어주는 길목으로써 조선시대부터 당시 상인들이 지역 특산물을 가져와 팔았다고 한다.

그렇게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지금까지 이어져와 국내 유명 5일장이 되었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다. 이후 독립의 열망은 더욱 커지고 강렬해져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그렇게 4월 1일 (음력 3월 1일) 천안에서 아우내장의 장날에 만세운동이 벌어진다.

약 3,000명의 장꾼들이 모이게 되고 총 3단계로 만세 운동을 진행했다.

1단계는 3,000면의 군중이 '대한독립 만세'가 적힌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누볐다.

2단계는 사망자의 시체를 주재소로 옮겨 항의하였다.

3단계는 일제 면사무소와 우편소를 습격하여 운동을 진행하였다.

아우내장터의 만세운동이 독립운동사에 큰 의미가 있던 이유는 호서지방에서 최대 만세운동이었으며 군중의 엄청난 응집력때문이었다. 이러한 응집력은 광복이후로도 이어져왔다. 전 국민이 성금을 모아 독립 기념관, 유관순 열사 유적, 그리고 사적지 등이 조성되었다.

 

또 한명의 독립 투사, 권애라 열사

권애라 열사는 유관순의 이화학당 2년 선배이다. 그녀는 유관순이 서대문 형무소의 8호실에 수감되었을 때 함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8호 감방의 노래>의 작사가로 추정된다. 8호 감방의 노래는 8호실의 수감자들이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불렀던 창가의 총칭이다. 현재 확인되는 노래는 <선죽교 피다리> 그리고 <대한이 살았다> 두 곡이다. 이 곡들은 2019년 가수 안예은, 박정현 그리고 김연아와 같은 유명 연예인의 참여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권애라 열사는 영화 <밀정>에 나오는 김우진(실명 김시현)의 아내이기도 하다. 그녀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한국인 여성들의 지휘 향살을 위해 노력했으며 개성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 3.1운동을 주도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녀 역시 수많은 고문과 취조를 받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후 생활고와 병마로 고생하다 1973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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