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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을 담은 영화

by BAMBINOO 2023. 1. 12.

영화 &lt;암살&gt; 포스터
영화 <암살> 포스터

16년 전 임무, 지금 수행합니다.

1933년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백범 김구 선생과 약산 김원봉이 암살 계획을 세우게 된다.
조선 주둔군 사령관인 카와구치 마모루 그리고 친일파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택된 3명의 인물이 선발된다.
폭발물 전문가 '황덕삼', 속사포라는 병명을 가진 '추상옥', 그리고 한국 독립군 '안옥윤'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인 '염석진'이 직접 이들을 찾으러 떠난다. 그러나 문제는 염석진이 일본제국의 밀정이었던 것이다.
그 역시 열렬한 독립투사였지만 죽음 앞에서 변절하게 되었다.

그렇게 암살 작전의 날이 다가온다. 카와구치와 강인국이 탑승하는 차의 기름을 미리 빼놓고 그들이 차량이 주유소로 들어오면 폭탄을 던지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작전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염석진을 통하여 암살작전의 타깃이 알려진 것이다. 속전속결로 끝났어야 했던 암살 작전은 결국 총격전으로 이어진다. 결과는 결국 실패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안옥윤는 자신과 똑 닮은 여성을 보게 된다.

안옥윤이 보았던 그 여성의 이름은 '미츠코'. 안옥윤의 쌍둥이 자매였다. 사실은 암살 타깃인 강인국은 안옥윤의 아버지였고 미츠코는 그녀의 언니였다. 머지않아 강인국의 귀에는 상해에서 내려온 암살자 3명 중 한명이 미츠코와 똑같이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자신의 딸을 흉내 내는 여성을 죽이는데 그가 죽인 건 악옥윤이 아닌 미츠코였다. 안옥윤은 일제의 앞잡이이자 언니를 죽인 강인욱을 암살하기 위해 미츠코의 행세하기로 한다. 그녀의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결혼 예정이었던 미츠코의 식장에서 카와구치와 강인국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번 작전에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픽션 영화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던 영화 <암살>은 상상력을 더한 일명 '팩션(faction)'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실존 인물로는 조승우 배우가 연기하였던 약산 김원봉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님뿐이다.
안옥윤과 인물들의 암살 타깃이었던 카와구치는 실제로는 조선 총독이었던 일본 육군 대장 우가키 가즈시게를 표현하였다. 약 35년의 일제강점기. 그 기간은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상처였고 슬픔이었고 암흑의 시기였다. 부정하고 싶어도 일상 그리고 현실되어 버렸던 시기였다. 일제의 힘은 점점 더 강해졌고 부유해졌다. 20년대에는 관동대학살이 일어나 약 6,500명의 죄없는 대한민국 민간인들이 학살당하였다. 영화 <암살>은 그동안의 우리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었던 시원한 영화였다. 영화 후반부, 염석진은 광복 이후 밀정 그리고 반민족의 죄로 재판받았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안옥윤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렇게 말한다.

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그렇게 안옥윤는 염석진을 처단하고 동료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장면은 나라를 배반하고 살아갔던 그리고 지금도 잘 살아가는 친일파에 대한 복수와 죗값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후련했던 장면이었다. 이 영화가 더 의미가 있었던 점이 있다. 천만관객이 돌파되었던 날이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한인애국단'에 김구가 있었다면 '의열단'에는 김원봉이 있었다. 여전히 둘의 관계와 김원봉의 사상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좌파이든 우파이든 그가 자발적으로 북으로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김구 그리고 김원봉 모두 일제강점기 당시 국가의 광복을 위하여 힘썼으며 한민족 한 핏줄이라는 것이다. 너무 이분법적인 사고로 접근하지 않기로 한다. 둘의 암살 활동은 독립운동사에 큰 업적으로만 남았으면 좋겠다.
1898년 경남 밀양에서 김원봉이 태어난다. 그는 중국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1919년 12월에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그는 추후 군사학교도 설립하여 일제와의 전면전을 위해 국내와 만주로 졸업생들을 파견시켰다.
이때 1기 졸업생에는 '시인 이육사 선생님'도 계셨다고 한다.
영화처럼 김구와 김원봉이 실제로 협동하여 친일파를 처단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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