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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 인물들에 더욱 집중시킨 흑백영화

by BAMBINOO 2023. 1. 9.

영화 &lt;동주&gt; 포스터
영화 <동주> 포스터

문학을 통해 그 시대를 이야기했던 시인 '윤동주'

일제강점기 당시의 연필을 잡았던 한 시인과 독립에 열망을 가졌던 그 시절을 그린 영화 <동주>.

동주에게는 친구이자 사촌이자 라이벌이었던 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송몽규. 그와는 같은 해 같은 집에서 태어나 모든 생을 함께 하였던 동반자였다. 심지어 죽음도 함께 하였다. 그들의 성격은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다. 강경파 적인 성격으로 혁명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던 몽규와 달리 동주는 온건파적 성격으로 섬세한 인물이었다.

당시 시대적으로 그들은 언제 일본군에 징집되어 끌려갈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렇게 그들은 경성(현재 서울)으로 떠나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학교'로 향했다. 그곳에서 정지용 선생을 만나게 되고 그는 동주에게 일본으로 갈 것을 권유받는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있었으며 일본에도 훌륭한 선생님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주는 '창씨개명'을 하면서까지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것은 조선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지용 선생은 이러한 말을 전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운 걸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 거지

동주와 몽규는 교토로 향하고 창씨개명을 받아드린다. 히라누마 도쥬 그리고 소무라 무게이.

동주는 릿교대학의 다카마쓰 교수의 눈에 들게되고 그는 동주에게 용기를 준다. 시를 다시 쓸 수 있는 용기.그러나 이 시대는 그를 그리고 독립에 열망이 있던 몽규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1943년 그들은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고 죄목은 '독립운동'이었다. 형무소에서 그들은 강압적인 신체 포기각서로 생체실험을 당하게 된다. 매일 매일 동주와 몽규는 정체 모를 주사와 고문에 시달린다. 그 결과 동주는 27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데 불과 조국이 광복하기 6개월 전 이었다. 그리고 동반자였던 몽규 역시 그해 다음 달 3월에 사망하게 된다.

 

 

영화 곳곳에서 윤동주의 고뇌가 담겨있는 시 13선

영화는 초반부부터 윤동주 시인의 시 <내일은 없다>로 시작이 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윤동주'라는 이름 석자는 익숙하고도 친숙할 것이다. 그의 시는 학교 교과서 그리고 문제집을 막론하고 이곳 저곳에서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부끄럽지만 나 역시 잘 알지 못하였다. 그가 잘 할 수 있었던 시 쓰기로 그 시대를 이야기 하였으며 그만의 방식으로 독립을 외쳤다.

영화 중간중간 윤동주 시인의 시 13편이 등장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별 헤는 밤>을 비롯하여 <흰 그림자>, <쉽게 씌여진 시>, <병원>, <새로운 길>, <아우의 인상화>, <바람이 불어>, <참회록>, <봄>, <사랑스런 추억>, <공상>, 그리고 <자화상>까지. 영화 <동주>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시는 <참회록>이다. 그 당시의 어둡고 어려운 시대 속에서 동주의 고뇌와 자아 성찰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잊어서는 안되는 또 다른 시인 '이육사'

1904년 4월 4일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한 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이원록'. 훗날 그는 이육사로 불리게 된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당시 관동대지진이 일어났다. 자국민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하여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게 되고 6,500명 이상의 조선인이 학살을 당하게 된다. 이 억울한 죽음을 목격했던 이원록은 조국으로 돌아와 조국의 독립을 위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40평생 17번의 옥살이를 하고 44편의 시를 남겼던 이원록. 그는 억울한 옥살이 중 부여받은 수인번호 '264'를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개명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이육사'라는 이름으로 독립운동을 위해 무장 독립단체 '의열단'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육사의 대표작으로는 <절정> 그리고 <광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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